교정
노트

글 · edit-alone
오래된 농담

오탈자는 편집자들의 아주 오랜 농담거리인 것 같다. 출간 후 오탈자가 있을 거라며 불안해하는 것, 오탈자를 발견한 후 머리를 쥐어뜯는다든가 하며 괴로워하는 것, 오탈자는 자연발생한다며 우스갯소리 하는 것, 모두 나에게는 별로 재밌지 않은 이상한 태도로 여겨졌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장난을 치고 있거나 잰 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탈자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면 저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 경우에는) 오탈자가 독서 경험을 심각하게 방해한 적도 없는 데다가 솔직히 말해 사람들은 오탈자에 큰 관심이 없지 않나? 남들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소한 것에 연연하면서 그것을 놓친 것을 알아차린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 킬킬거리는 것은 너무나 변태 같지 않은가? 내가 보기엔 확실히 그랬고 그래서 나는 오탈자를 발견하면 어떡하냐는 농담에는 오탈자 무조건 없을 거라고 이야기했고 오탈자 찾았다는 말에는 어쩌라고, 식으로 대처했고 자기가 낸 오탈자를 발견하고 괴로운 시늉 같은 걸 하는 사람은 속으로 아니꼽게 생각했다. 오탈자에 대한 과한 집착 같은 게 진짜로 싫었다. 어차피 아무도 책을 안 읽고 읽어도 오탈자인지 잘 모를뿐더러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오탈자가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그런 태도는 편집자가 하는 일을 오탈자 찾기로 축소해 버리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오탈자 타령만 하려고 그러지?

기획 편집자

아직까지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오래된 저자들과 오래된 역자들과의 연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고 사오 년이 넘도록 출간되지 않고 쌓여 있는 원고도 열 개가 넘는 것 같다. 모 상급자는 내가 수습 생활을 하는 동안 나에게 주는 푼돈이 아까웠는지 회사에 쌓여 있는 모든 계약서를 스캔하라고 지시했고 나는 매일 열 개에서 스무 개씩의 계약서를 스캔하고 저장하고 스캔하고 저장했다. 첫 책을 내면서 일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스캔을 쉬엄쉬엄했을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늦여름에 시작한 그 일은 다음 해 겨울에 끝났고 나는 수많은 계약서를 스캔해서 피디에프 파일을 생성했다. 모 상급자는 지저분하고 노후화된 느낌을 주는 계약서와 계약 과정을 전자화해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스캔한 계약서들은 별다른 쓸모도 없었고 이전과 별다른 변화도 없이 그저 쌓여 있었다. 종이로 쌓여 있던 것에 추가로 파일로 쌓여 있는 것이 더해졌을 뿐이고 쌓여 있는 원고도 변함없었다. 모 상급자가 수많은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 가져오는 원고도 많았고 함께하고 있는 저자들이 새로 내고 싶어 하는 책도 넘쳤기 때문에 늘 쌓여 있는 원고만 맡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 기획된 책보다는 이미 기획 단계는 지난 책을 맡게 되는 일이 더 많았다. 기획 편집자보다는 교정 편집자에 가까운 업무를 하는 것이다. (연차가 낮은 탓이기도 할 것이다.) 경력직으로 입사를 해 얼마 되지 않아 퇴사를 한 타 편집부의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작은 회사에서는 기획이 활발한 편이고 신입에게도 기획을 할 기회가 자주 돌아가는 편인데, 그것은 꼭 좋은 것만은 아니고 회사가 쌓아 온 네트워크가 없다는 의미, 혹은 번역서를 진행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획은 재미있는 일이다.

조용한 편집자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일할 때 반드시 그래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사람 만날 일을 별로 만들고 싶지 않다. 나는 국내서보다는 외서를 많이 하고 싶다. 원고가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모자라 책까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저자를 상대하기도 싫고 문장을 많이 고쳤다고 이상한 소리를 듣기도 싫고 (이것은 역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해외 편집자의 손길을 거친 말끔한 원고가 좋고 (모 선배는 번역을 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고 했지만) 무엇보다 해외의 책을 소개하는 것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편하고 수동적으로 일하고 싶다. 그런데 여기서 수동적으로 일한다는 뜻은 교정교열에만 참여한다는 뜻인데 교정교열을 편집 과정 중에 가장 수동적인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교정교열에만 참여하게 되면 맡은 책을 무척 재미없게 여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저자와 번역자가 정해져 있고 원고가 모두 준비된 상태에서 교정을 시작하기 때문에 책이 아무리 재미없어도 편집자가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며 그저 꾹 참고 해야 하며 꾹 참고 하다 보면 책의 재미있는 부분도 보이기 마련인데 그런 부분들을 재미있다고 믿으면서 일하다 보면 나 자신을 속이는 기분도 들지만 어쨌든 책을 내고 나면 그 책을 굳이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아진다. (하지만 저자 선정, 원고 주제 선정, 집필 단계에서의 활발한 대화 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해서 내가 맡은 책을 사랑하게 될까?) 또 나 자신을 속이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행위 자체에 분명 어떤 솔직하지 않다면 솔직하지 않은 뭔가가 있는 것 같기도… 어쨌든 나에게 교정교열은 즐거운 일인데 교정교열은 기획보다 소극적인 행위일까? 그리고 교정은 교열보다 소극적이고 따라서 중요하지 않은 일일까?

교정이 덜 된 책

사내 워크숍에서 타 편집부 부장님이 발표를 했다. 요즘 주목을 받는 책들은 유명 저자가 쓴 책이 아니라 권위가 없는 개인의 소소한 정체성을 내세운 책이다, 텀블벅으로 후원을 받아 만든 책도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런 책의 경우에는 편집자가 없는, 혹은 처음부터 편집자가 개입한 것이 아니라 중후반 작업부터 편집자가 개입한 경우인데, 과연 요즘의 독자들이 에디팅을 통해 책의 질을 끌어올리는 작업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 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나는 젊은 편집자이자 젊은 독자인데 최근의 어떤 책들을 읽으면 확실히 내가 예전에 읽고 알아 왔던 책의 이미지와 다른 책들이 많이 기획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느낀다. 작고 가벼운 판형의 책, 마니아(오타쿠)가 쓴 책, 이런 책들을 읽어 보면 나는 솔직히 뭔가 교정교열이 덜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데 문장이 구어체에 가깝고 오탈자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글의 흐름도 묘하게 느슨한 것 같다. 내가 알던 책과 다른 책이라는 느낌에 낯설기도 한데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치밀하게 짜이지 않은 글은 다른 이야기로 샐 구멍이 많아 글에 바람이 통하게 해 주는 것 같고 엉뚱하거나 애매하게 끝나는 문장이 안정적인 문장의 형태를 벗어나 오히려 독서의 지루함을 줄여 주는 것 같다. 오탈자가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고 한동안 그 오탈자가 시선을 잡아끌지만 그것은 내가 맞춤법에 엄격한 독자이자 편집자여서 더 예민하게 느끼는 것일 테다가 책의 재미를 낮춘다고는 못하겠다. 그럼 뭐지. 교정교열은 왜 필요하지. 어떻게 얼마만큼 해야 하지.

과교정

어느 날 상급자가 나를 불러 교정을 너무 많이, 그리고 잘못 봤다며 듣기 싫은 소리를 했다. 그 책은 국내서였는데 나는 처음 국내서를 맡아 보았고 원고의 상태가 그럴 수가 있다는 것에 너무나 놀랐다. 그때 나는 겨우 두세 권의 책을 교정해 본 상태였는데 그 책은 내가 이전의 책들에서 했던 교정교열 수준으로는 수습이 안 되는 원고였다. 나 혼자로는 부족해 상급자와 나는 차례로 동시에 교정을 보았는데 초교 때 상급자가 원고를 뜯어고치고 새로 쓰다시피 해서 겨우 책의 꼴을 갖출 수 있는 무엇으로 만들어 냈고 나는 이렇게까지 할 수도 있구나, 교정의 신세계를 깨우치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 뜯어고친 원고를 가지고 교정교열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너무 쉽지 않고 어려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고 내가 어떻게 새로 쓸 수는 없고 어떻게 고쳐도 책으로 만들 수 있는 형태가 안 나와서 문장 문장마다 좌절했다. 나는 조사 ‘은’을 ‘이’로 바꾼다거나 ‘하고’를 ‘해서’로 바꾸는 등 사실상 아무런 교정이 되지 않지만 어떻게든 문장이 자연스러워 보이게 눈속임이라도 하려고 했다. 이런 것을 책으로 만든다니 정말 말도 안 돼, 나는 그 저자가 다른 출판사에서 낸 책을 찾아 읽어 보며 그것을 읽을 만한 꼴의 글로 만들어 낸 얼굴 모르는 편집자들에게 전화 걸고 싶었다. 이걸 어떻게 고치란 말이에요. 그러나 상급자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문학팀은 원고가 들어오면 쭉 읽고 ‘교정’을 해서 바로 조판을 한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지 안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우리 저자들은 자기 분야의 연구만 해 오던 사람이기 때문에 매일 글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과 같을 수 없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말은 슬펐다.

편집자와 뒷정리

교정을 하다 보면 저자가 잘못 쓴 부분이나 역자가 잘못 번역한 부분을 찾게 되기 마련이다. 분야의 전문가가 쓴 책이라도 맥락상으로 잘못된 부분을 파악할 수 있고 번역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것은 업무 특성상 같은 원고를 아주 꼼꼼하게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편집자의 역할 때문인데 나는 자주 우쭐해지고 오만해졌다. 하지만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그들에게는 틀릴 자유가 주어져 있는 것이고 교정 편집자는 그들의 실수를 뒷정리해 주는, 교수의 대학원생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닐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편집자는 저자나 역자가 실수한 것까지 꼼꼼하게 잡아 정확하게 고쳐 독자의 이해를 돕는 일을 하는 것이겠지만,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기가 어렵다.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

나는 어제 마감을 했다. 늘 그렇지만 최종 파일을 만든 후 몇 가지 교정해야 할 사항을 찾아내고 좌절했는데 그것들은 맞춤법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책 내부에서 전체 통일한 띄어쓰기를 단 한 군데만 다르게 한 경우였다. 어느 쪽이든 맞춤법상으로는 문제가 없고 아까 말한 교정이 덜된 것 같은 요즘의 재미있는 책들을 읽다 보면 띄어쓰기가 다른 경우야 너무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나는 편집부의 인간들에게 책 내부에서는 무조건 통일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띄어쓰기가 통일이 안 되어 있는 부분을 찾아서 교정 표시를 하고 나서 피디에프 파일로 검색을 돌려 봤다. 정말 환장하겠는 건 정말 그 띄어쓰기를 다르게 한 부분이 ‘단 한 군데’였다는 것이다. 차라리 반은 되어 있고 반은 안 되어 있었더라면. 길고 긴 책에 수십 번 사용된 그 단어가 한 군데만 다른 띄어쓰기로 되어 있고 내가 그것을 마지막 단계에서 찾아냈을 때 완벽한 책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희열은 1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좌절하게 된다. 편집자가 왜 힘들다고 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아. 교정교열에 대한 어떤 약속들을 알기 전에는 이렇게 힘들고 슬프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찾아보기를 앉혔고 알파벳으로 시작되는 용어가 많아 한글 범례와 영어 범례를 따로 두었다(가~하, A~Z). 그런데 전산실 차장에게서 전화가 와서 이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편집장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고 편집장에게 한글과 알파벳 범례를 따로 두는 거 아니냐고 하니 그렇게 안 한다고 했다. 만약 KFC를 찾아보기에 넣고 싶다면, KFC를 외국어 읽기 규칙에 따라 ‘케이에프씨’로 읽어, ‘카’ 범례에 ‘케이에프씨’라는 발음에 맞춰, 가나다순에 맞는 순서로, ‘KFC’라고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바보 아닌가?). 결국 고치긴 고쳤는데 내가 이걸 왜 고치고 있나? 노래방에 있는 노래방 책에나 그렇게 되어 있는 거 아닌가? 누가 RNA를 찾아보기에서 찾을 때 ‘아’ 범주에서 ‘아르엔에이’(심지어 ‘아르’로 읽어야 한다고 한다)로 찾나? 구닥다리 규칙들… 나는 이를 갈았다. 하지만 이런 규칙들에 자꾸 익숙해지면 안 돼. 다음번에 책을 만들 때는 찾아보기를 만들 때 꼭 가나다와 ABC를 구분해서 넣을 거야. 이런 미친 짓 다신 안 할 거야. 나는 생각했다.

어차피 아무도

하지만 어차피 아무도 책을 안 읽는다고 생각하면 편집자가 하는 모든 일들은 미친 짓이다. 오탈자를 찾는 것도 미친 짓, 장 첫 문단 들여쓰기를 해제해 달라고 하는 것도 미친 짓, 표지 문구 한 글자 바꾸려고 최종 수정하는 것도 미친 짓… 그냥 편집자가 하는 모든 일이 미친 일 같다. 애초에 편집자가 하는 일 대부분이 남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에 연연하면서 그것들의 통합적인 효과가 있다고 믿으며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니까. 입사하고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출간 기념 강연회에 따라갔는데 강연자가 책의 어떤 부분을 확대해 빔 프로젝터 화면으로 띄웠다. 그때 그 책을 담당 편집한 선배는 갑자기 나를 붙잡으며 오탈자 있으면 어떡해? 라고 말했는데 갓 회사에 들어간 신입이었던 나는 책을 확대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그런 것이라니 이들은 미친 자들이구나 생각했다. 어떤 미친 일은 그럭저럭 용인할 수 있지만 어떤 미친 일은 정말 미쳤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차피 아무도’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편집자가 가져야 하는 윤리?를 잃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편집자로 일하게 된 나 역시 미래가 좋고 세련된 것이 좋고 구닥다리 규칙들이 없었으면 좋겠고 조금 더 느슨하게 살 수 있기를 꿈꾼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오늘 어떤 사진 잡지를 읽었고 그것은 나와 내 회사의 기준으로 보면 오탈자와 잘못된 띄어쓰기가 넘쳐 나는 책이었지만 난 그것이 그것대로 좋았다. 미래의 교정은 교정하지 않는 것일까? 미래의 교열은 교열하지 않는 것일까? 교정 편집자라는 것도 사라지게 될까?

교정 프로그램

교정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띄어쓰기를 통일하는 일 같은 건 특히. 교정이야말로 기계가 해야 하는 일이다. 찾아보기를 하나하나 찾아서 만든다는 말에 개발자 친구는 경악을 했다. 대체 왜? 컴퓨터는 오류가 없어. 컴퓨터에 오류가 없는지에 관한 그의 의견에는 동의가 불가능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 만한 사람이 없고 아무도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지지 않을 뿐 마음을 먹는다면 너무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전의 데이터베이스를 모아 프로그램에 먹인 후 통일성 규칙 등을 적용하고 사용자가 초깃값 등을 잘 입력해 주면 될 것이다. 그래서 편집자가 돈을 얼마 못 받는 걸까? 글자 귀신 같은 상급 편집자들을 생각해 본다. 몇 초 슥 훑어보고 귀신같이 오탈자를 찾아내는 그 인간들… 그리고 나……


2020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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