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꾼 단상

던질 수 없어 던지고 싶은데
그런 슬픈 기분인걸

글 · gamniggun

요약

감리밭의 파주꾼에게 허락된 놀이는 이것뿐인가? 결국 허공을 바라보는 파수꾼밖에는 길이 없나?


점심을 먹으러 일찍 길을 나섰다. 밥을 얼른 먹고 원반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모밀국수와 주먹밥을 먹고 공터로 걸어왔을 때는 12시 반 무렵이었다. 한 달 전만해도 거의 텅 비어있던 곳인데 날씨가 좋아져서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한 손에 커피를 든 사람들, 담배 피우는 사람들, 작정하고 낚시의자와 미니테이블을 챙겨온 사람들도 있었다.

어디서 하지...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적당한 넓이의 그늘을 찾아 삼각형으로 섰다. 나부터 시계방향으로 원반을 던졌다. 해슬 꼭짓점이 원반을 한번에 잡았다. 그리고 상하 꼭짓점을 향해 던졌는데, 원반은 상하 꼭짓점의 정수리를 지나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의 머리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차에서는 마침 궁예처럼 한쪽 눈을 가린 차주가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는데...

퍽, 하고 원반이 차 주둥이에 맞았지만 차주는 차에 맞는 소리라고 생각을 못한 건지, 알고도 그냥 모른 척 한 건지 우리를 무시했다. 천만다행이었다. 차가 맞든 말든 원반을 계속 던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는 어른이니까, 어른은 내가 긁은 차에 대해서 내가 보상해야 되니까 원반 놀이를 접고 가만히 벤치에 앉았다.

한순간에 유일한 놀이거리를 잃어버린 어른은 오늘도 멍하니 풍경을 바라봤다. 감리밭의 파주꾼에게 허락된 놀이는 이것뿐인가? 결국 허공을 바라보는 파수꾼밖에는 길이 없나? 우리 앞에는 커다란 돗자리를 편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눕거나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에겐 1인용 돗자리뿐인데 저분들은 4인용 돗자리를 가졌구나! 동산이자 일시적 부동산인 저것을 사야겠다. 원룸 돗자리에서 벗어나겠어. 오늘도 무언가를 사는 것으로 인생의 헛헛함을 덜어보려 애쓰는 감리꾼이었다.

사무실로 복귀해 컴퓨터를 켜니 합격 통지 메시지가 와 있었다.

감리꾼시 업무를 정했어요. 저자 + 감리.

‘계절별 7일 휴가 제공’이라는 파격적인 복지제도를 가진 ((아직) 유령) 회사다. ‘계절’의 해석을 놓고 인사담당자와 공방이 오갔는데 최종적으로 어떻게 결정이 났는지 물어봐야 한다. 한국의 계절은 4개인가, 8개인가, 12개인가. 나는 봄‧여름‧가을‧겨울을 각각 초-, 한-, 늦-으로 구분하는 12계절주의자이다. (오늘부터 그렇게 됐다.) 그 사실을 밝혔는데도 나를 뽑아주다니 좋은 회사임에 분명하다. 이곳에선 더 훌륭한 감리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글도 한 편 썼지 않은가? 복지는 저자+감리꾼도 춤추게 한다.


2020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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