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꾼 단상

인생은
버터콘
같은 것

글 · gamniggun

요약

인생은 점심시간의 버터콘 같은 것.
내가 선택했지만, 내가 원했던 맛이 아닌, 그럼에도 끝까지 먹어야 하는 것.

기온이 26도씨까지 오른 5월의 한낮이었다. 내 오른손에서는 반쯤 먹은 버터콘이 녹아내리는 중이었다. 너무 단, 너무 달아서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버터캔디맛의 아이스크림.

밥을 조금 빨리 먹은 터라 공터의 벤치에 앉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늘 그렇듯 아쉽고 찜찜한 기분으로. 이걸 채워줄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반차도 말고, 퇴사도 말고.

오늘은 약간 배가 덜 부른 듯한 느낌도 있었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는 아이스크림에 대한 욕망이 떠올랐다. 시원하고 달콤한 크림맛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산책을 한다면? 조금 살맛이 날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내가 말했다.
"가요" 하고 독립편집꾼 씨가 말했다.

둘은 허한 마음과 위(그리고 뇌)를 채워줄 아이스크림을 향해 걸어갔다.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과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할 것 같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나날을 공유하면서.
편의점에 다다라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둘러보았다. 먹고 싶다 생각했던 것들 틈에서 버터콘이라는 새로운 아이스크림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버터에 반응하는 버터인간으로서 한번 먹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내 오른손에서는 반쯤 먹은 버터콘이 녹아내리는 중이다. 나는 인생 처음으로 버터에 배신 당한 채 이것이 버터의 잘못인지 해태제과의 잘못인지 나의 잘못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햇살은 따갑고, 눈송이처럼 떠다니는 알 수 없는 식물의 솜털씨앗 속을 걸었다. 이 무렵이면 출판단지를 가득 채우는 씨앗들은 공중을 떠다니다가 서로 뭉쳐 가라앉아 바닥을 뒹굴었다.

"이 아이스크림이 꼭 제 인생 같네요."
"네?"
"분명히 제가 선택했는데, 원했던 맛이 아니고, 근데 끝까지 먹긴 해야 되고."

내가 만들고 싶었던 책, 만들고 싶었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아이스크림은 계속 녹아내렸다. 버터콘 꼭대기에 올려져 있던 쿠키가루 색의 (중형) 푸들이 우리 곁을 지나갔다. 여기저기 꽃 냄새를 맡으며 걸어가는 강아지에게 나는 진 것 같았다. (당연히 그 푸들은 내 인생 같은 것에 관심이 없고, 강아지는 이겼다는 생각도 없이 항상 이길 것이며, 애초에 우리 둘의 인생은 같은 저울에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제 인생이 녹아내리고 있어요 독립편집꾼 씨."

이건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인 걸까. 상상했던 맛과 너무 다른 아이스크림을 끝까지 책임지고 먹는 것이 어른됨일까?
"그거 버릴 거예요?"라고 묻는 말에 꾸물거리며 답을 하지 못한 채 사무실로 아이스크림을 나르다가 돌아섰다. 탕비실의 음식물 쓰레기통에 반쯤 남은 버터콘을 던져 넣었다. 내가 원했던 건 아이스라테의 맛이었음을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처넣으며 깨닫는 것, 이것이 어른의 삶이구나.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친구가 선물해준 드립백으로 커피를 내렸다. 이 단맛을 날려줄 맛은 커피뿐이었다. 역시, 인생은 단쓴단쓴인가.
그나저나 내가 원했던 삶은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지? 혹은 내가 원했던 게 이게 아니었다는 깨달음은 얼마나 늦게 올 작정이지? 그래도 아이스크림은 끝까지 먹지 않아도 되니까 다행이다. 언젠가 꾸역꾸역 원했던 맛이 아닌 삶을 붙들고 버리지도 먹지도 못하고 있을 때, 버터콘을 떠올려야지. 그리고 쓰레기통을 열고 손에 들고 있던 인생을 가차 없이 던져버려야지. 그게 어렵다면 커피를 내려 같이 먹으면 된다. 인생은 단쓴단쓴이니까.


2020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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